합의서에 서명한 뒤 후유증이 나타나면 다시 청구할 수 있나요?
원칙은 청구할 수 없다는 쪽이다. 대법원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피해자가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때에는 그 후 그 이상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다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본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판결들이 후발손해에 관한 좁은 예외를 함께 제시하고 있고, 그 예외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때만 열린다. 조건을 하나라도 채우지 못하면 합의서의 포기 문구가 그대로 효력을 유지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이미 서명이 끝난 뒤의 문제다. 서명 전에 무엇을 확인하는지는 합의 전 체크리스트에, 언제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인지는 합의 시점 판단 기준에 따로 정리돼 있다.
교통사고 합의는 법적으로 어떤 계약인가요?
화해계약이다. 「민법」(2026년 3월 17일 시행, 법률 제21454호) 제731조는 화해를 “당사자가 상호양보하여 당사자간의 분쟁을 종지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정의한다. 분쟁을 끝내기로 하는 약정이라는 점이 일반 계약과 다른 출발점이다.
이어지는 제732조는 화해에 창설적 효력을 부여한다. “화해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양보한 권리가 소멸되고 상대방이 화해로 인하여 그 권리를 취득하는 효력이 있다”는 문언이다. 합의금 액수가 실제 손해와 맞았는지를 나중에 따지는 대신, 양보한 부분의 권리 자체가 소멸한 것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되돌리는 통로도 좁혀져 있다. 제733조 본문은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하여 취소하지 못한다”고 정한다.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으면 취소할 수 있다는 제109조제1항의 일반 규정이 화해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단서가 남긴 예외는 화해당사자의 자격에 착오가 있는 때와 화해의 목적인 분쟁 이외의 사항에 착오가 있는 때뿐이다.
세 조문을 겹쳐 보면 합의서의 “나머지 청구를 포기한다”는 문구가 왜 강한 효력을 갖는지가 드러난다. 후발손해 법리는 이 원칙을 깨는 장치가 아니라, 포기의 의사가 애초에 그 손해까지 미쳤다고 볼 수 있는지를 해석하는 문제로 다뤄진다.
예외가 인정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나요?
대법원이 반복해 제시한 기준은 세 가지다. 대법원 1991. 4. 9. 선고 90다16078 판결과, 교통사고 사건인 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다39418 판결 및 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63176 판결이 아래 문언을 그대로 쓰고 있다.
| 요건 | 판결이 쓴 표현 | 무엇을 보는가 |
|---|---|---|
| 합의 시점 |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 | 사고일과 합의일의 간격, 합의 당시 치료 단계 |
| 예상 가능성 | 후발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이 불가능한 것 | 합의 당시의 진단명·검사 결과로 그 후유증을 내다볼 수 있었는지 |
| 손해의 중대성 | 예상하였더라면 사회통념상 그 합의금액으로는 화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할 만큼 중대한 것 | 합의금액과 뒤늦게 확인된 손해의 격차 |
세 요건은 순서대로 걸러지는 구조다. 합의가 치료 종결 후 손해 범위가 확인된 시점에 이뤄졌다면 첫 요건에서 막히고, 합의 당시 진단서에 이미 단서가 있었다면 두 번째에서 막힌다. 금액 차이가 크지 않으면 세 번째를 넘기 어렵다.
주의할 점은 이 기준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피해자의 주관이 아니라 합의 당시의 객관적 사정을 본다는 데 있다. 판결이 쓰는 표현도 “예상이 불가능한 것”이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실제 사건에서 이 예외를 인정했나요?
위 세 판결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법리를 선언한 판결들이 정작 결론에서는 합의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시켰다는 점이 이 쟁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 사건 | 사안 | 결론 | 근거 |
|---|---|---|---|
| 대법원 1991. 4. 9. 선고 90다16078 판결 | 의료사고 손해배상 합의 | 합의가 나머지 손해배상청구권의 포기로서 유효 | 위 세 요건을 제시하면서도 그 사안에서는 합의를 유효로 판단 |
| 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다39418 판결 | 교통사고 후 합의, 뒤에 후유장애 주장 | 후유장애로 인한 일실수익·위자료 청구가 부적법 | 합의 당시 후유장애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봄 |
| 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63176 판결 | 대퇴골 경부골절 수술 후 고관절 운동제한을 기초로 합의, 뒤에 하지단축 장해 판정 | 기존 합의의 효력이 뒤에 판정된 장해로 인한 손해에도 미침 | 같은 골절상에서 비롯된 손해로 봄 |
99다63176 판결의 사안은 특히 경계선을 보여 준다. 합의 당시 기초로 삼은 후유장해와 나중에 판정받은 후유장해가 항목상 다르더라도, 그것이 같은 부상에서 비롯된 것이면 새로운 손해가 아니라 이미 합의된 손해의 범위 안으로 묶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읽어야 할 것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예외의 문턱이 어디에 있는가다. “예외가 있으니 다시 청구하면 된다”는 이해와 실제 판결의 거리가 상당하다. 후유장해 판정 자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후유장해 등급과 보상에서 별도로 다룬다.
합의한 지 3년이 지났으면 시효로 끝난 건가요?
예외 요건을 갖춘 후발손해라면 기산점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민법」 제766조제1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하고, 제2항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같다고 정한다.
쟁점은 후발손해를 “안 날”을 언제로 보느냐다. 대법원 1986. 12. 23. 선고 86다카536 판결은 합의가 아니라 소송 중 이뤄진 신체감정을 다룬 사건이지만, “안 날”의 판단 방식을 보여 준다. 이 판결은 불법행위 당시 예견할 수 없었던 후유증이 1차 신체감정으로 일응 밝혀진 뒤, 상당한 기간이 지나 시행한 2차 신체감정에서 그 후유증의 정도가 1차 감정만으로는 도저히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중한 것임이 다시 밝혀졌다면, 2차 감정으로 추가로 밝혀진 후유 정도에 따른 손해는 피해자가 그때 비로소 알게 된 새로운 손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사고일이 아니라 그 손해를 알게 된 시점이 기산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시효를 새로 시작시키는 규정이 따로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제766조제2항의 10년은 불법행위를 한 날을 기준으로 흐르므로 별도로 남는다. 시효 계산의 일반적인 구조는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에 정리돼 있다.
그래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요?
확인 순서는 합의 문서에서 시작해 의무기록으로 넘어간다.
- 합의서 원본에서 포기 문구가 대상으로 삼은 범위를 확인한다. 사고 전체인지, 특정 손해 항목인지, 특정 시점까지의 손해인지에 따라 「민법」 제731조가 말하는 종지 대상의 범위가 달라진다.
- 사고일과 합의일의 간격, 합의 당시의 치료 단계를 확인한다. 첫 요건인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해당하는지를 가르는 사실이다.
- 합의 당시의 진단서와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그 시점 기록에 지금의 후유증을 예견할 수 있는 소견이 있었다면 99다39418 판결과 같은 결론에 가까워진다.
- 새로 확인된 후유증이 합의의 기초가 된 부상과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한다. 99다63176 판결이 갈린 지점이다.
- 그 손해를 알게 된 시점을 특정할 자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감정서나 진단서의 작성일이 제766조제1항의 기산점 판단 자료가 된다.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반대 방향의 사실이 확인되면 후발손해 주장이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판단이 갈리는 지점이 법 조문보다 개별 기록에 몰려 있는 쟁점이므로, 문서를 먼저 모으는 편이 순서에 맞다.
참고한 공개 자료: 민법 제731조 화해의 의의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732조 화해의 창설적효력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733조 화해의 효력과 착오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109조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766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국가법령정보센터), 대법원 1991. 4. 9. 선고 90다16078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다39418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63176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대법원 1986. 12. 23. 선고 86다카536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